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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 문중 역사 > 유래 > 선계전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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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전략(先系傳略) 옛날 성씨(姓氏)를 얻음에는 반드시 그 연유가 있었는데 혹 훈봉(勳封)을 받음으로 성(姓)이 되기도 하고, 혹은 왕의 은총(恩寵)으로 성이 얻어졌으며, 혹은 사물의 인용으로 성이 지어지기도 했고, 혹은 탄생에 연유하여 성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는데, 이런 사례는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다. 계림(慶州)의 김씨·박씨와 화산(花山)의 권씨와 남평(南平)의 문씨가 그러하다.우리 하씨는 삼한시대부터 있었으니 우리나라의 오래 된 성씨일 뿐 아니라 고려시대에는 성족(盛族)이었으며, 중국에도 하씨 성이 많이 있었음이 기록에 나타나 있다.(고려 의종 十六년에 중국에서 하부와 송도강이 같이 왔고, 충렬왕 원년에 원나라가 병부랑중 하문저를 보내었다.그 밖에도 연경에 다녀온 사람이 그 곳에도하씨 성이 많이 있다고 한 말이 있다.) 그러니 창씨한 선조와의 계승적 연맥이 있을 것이나 고증할 문헌이 없다. 좌사랑중(左司郞中)이었던 항절사(抗節使) 하공진(河拱辰)이 시랑(侍郞)에 증직(贈職)되어 고려사에 나타나 있으므로 하씨는 모두 시랑공의 후예인 것처럼 혹자는 말하나, 우리의 천부원군(晋川府院君) 원정공(元正公) 송헌부군(松軒府君) 휘 즙(楫)께서 탄생하신 해가 충렬왕 二十九년(一三○三)임이 확인되므로, 이를 거슬러 상고해 보면 사직공(司直公) 휘 진(珍) 부군께옵서 고려의 정종과 문종 대에 벼슬을 하신 때가 시랑공(河拱辰)과는 겨우 십 몇 년의 차이가 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이러므로, 문효공(文孝公) 휘 연(演)께서 다만 들리는 바로는 동원(同源)이라 하나 분파(分派)됨을 알 수 없다 하시고, 또 먼 조상에 상서도성복야(尙書都省僕射 : 고려 정승 正二品)벼슬을 하신 분이 계셨으나 이름자가 전해지지 않았음을 한탄하시고 사직(司直) 벼슬을 하신 휘 진(珍)부군을 시조로 모시었다. 일설에 신라 유리왕 때에 아찬(阿飡) 벼슬에 있던 분이 바른 말로 왕에게 간(諫)하다가 쫓겨나서 해도(海島)에 들어가니, 섬 사람들이 아찬관이라 부르므로 언덕 아(阿)자의부 탄(呑)변을 물수변(氵)으로 고쳐 자칭 하찬관(河飡官)이라 하였다는 말이 있으나, 이는 육지를 버리고 바다로 들어갔다는 뜻으로 하씨 성을 삼았다는 것인데 확실한 근거가 없으므로 함부로 믿을 바 못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