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파설(分派說)
진양(晋陽)을 본관(本貫)으로 하는 하씨에 세 파(三派)가 있다는 설이 있는데 그 중 한 파는 우리 사직공파요 다른 한 파는 시랑공파인데, 또 하나의 파는 확실하지 않다. 혹 동정공(同正公) 휘 성(成)부군을 일파라 하나, 동정공이 우리의 참지공( 知公) 휘 의(義)부군과 형제가 된다 하며 본가의 계첩(系牒)도 이러하다. 또, 문효공께서 만드신 족보 서문에도 들은 바로는 시랑공이 우리와 동원(同源)이라 하나 분파가 확실하지 못하다는 말씀은 있으나, 동정공 휘 성 부군의 후손인 집의공 휘 담(澹)부군과 사육신 단계공 하위지(河緯地)선생이 당시에 같이 조정에서 현달(顯達)하셨는데도 그 근원과 분파의 같고 다름을 언급하지 않으셨으니, 생각컨대 그 분파는 매우 명확하여 말할 필요 없이 우리 파였으므로 그리하신 것이리라.
또,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은 하안린(河安麟)을 중조(中祖)라 하였는데, 하안린의 후손 쌍오정(雙梧亭) 하징(河澂)의 수기(手記)에는 시랑공이 시조이나 중간에 계대(系代)를 잃었다 하였으므로 진양 하씨 세 파의 하나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살펴보면, 고려시대에 나타난 하씨가 매우 많은데 높은 벼슬에는 하흥휴(河興休), 공훈(功勳)에는 하주려(河周呂), 절의(節義)에는 하경택(河景澤), 문장에는 하천단(河千旦) 등의 여러 분이 계셨고, 그 밖에도 하충제(河忠濟), 하수홍(河守洪), 하언석(河彦碩), 하칙보(河則寶), 하유원(河有源), 하사청(河斯淸), 하예(河汭) 등의 여러 분이 계서 모두 당시에 이름이 높이 알려졌으며, 또 밀직사(密直使) 하복장(河福莊)은 곧 우리 선대 고헌부군(苦軒府君)의 장인이시나 지금은 그 집안들이 전해지지 않으므로, 생각컨대 진양하씨 세 파 중의 한 파는 전해지지 않는 터이다.